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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문】악마는 항상 꼴찌부터 잡아먹는다
  • 기사등록 2020-04-28 13: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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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편집부 기자.


‘다독(多讀)’에 미쳐 있던 10대 끝자락의 이야기다. 나는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른 책들을 장르 불문 독파 중이었다. 한때 대한민국은 20대에게 뭐라도 맡겨 놓은 것 마냥 재테크에, 여행에, 하다하다 청춘에까지 미치라며 등 떠미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한국사회는 무언가에 미치라고만 하곤 왜 미쳐야 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왜 미치지 않냐고 타박을 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 탓일까 교복 신세를 면치 못한 나 마저도 은연 중에 궁금했나 보다. 불쾌함만 남은 강요에서 경제학의 쓸모를, 앎의 힘 그 자체를.

그때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을 알게 됐다. 경제학이 수식과 그래프로 점철된 학문이 아닌 개인 하나하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사회 전체의 행복도’에 먼저 다가가는 학문이라는 점.
비로소 나는 경제학의 진정한 임무를 어렴풋이 알게 된 거다.

경제학에 윤리를 더했더니 복잡하고 어려운 줄만 알았던 경제가 전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다가왔다. 악마는 항상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서양의 속담처럼 극으로 치닫은 경제사회의 잔인함에 반박을 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되새기는 것. 더 나아가 이런 이념들이 모여 집단적 윤리의식을 행동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나는 그 깨우침을 토대로 아마르티아 센의 후생경제학(경제 활동이 국민의 복지와 후생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연구하는 학문)을 윤리철학 쯤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후생경제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센은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며 새 개념을 정립했고 1998년 아시아 출신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까지 손에 쥐며 영향력이 막대한 경제학자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효율을 중시하는 경제학의 틀을 깨버렸다. 보다 인간적인 가치를 기초에 두고 어찌 보면 이타적 경제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방향성이 또 하나의 지평을 열게 된 것이다. 그는 세계 경제의 후퇴, 즉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를 배척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것과 차별을 없애는 것이 우선이라 주장했다.

국민의 삶을 걱정하고 돌보는 권력을 위한 눈치싸움. 여당과 야당이 적절히 힘을 나누는 민주주의 체제에선 대기근이라는 극단적인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벵골 대기근 당시 수천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처참한 현실에도 지배국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 빈곤을 해결하지 않았고, 삶의 울부짖음을 무심함으로 일관했다.

이런 비참한 역사에서 센의 두 번째 경제철학이 드러난다. 약자에 대한 소홀함이 몰락의 시작점이라는 걸 그는 인종차별을 몸소 겪으며 깨우쳤다. 식민지국에 대한 박탈과 억압이 대기근을 이뤄낸 일처럼 경제발전의 최대의 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고품격, 과다 공급 따위 허울이 아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실질적 재화, 자유의 확장이 즉 경제적 발전이다.

이 대목에서 센의 경제학은 기존의 수식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누구나 풍요로움을 누릴 권리를 만들고 인간의 기본권 확대를 위해 아주 오래, 깊은 고찰을 한 그는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이들을 중점에 뒀다.

하지만 이 거대담론의 허점 또한 외면할 수는 없다. 현대사회의 발전된 국가에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건 민주주의 체제 만큼의 자유시장경제 발달이 아주 큰 축을 이루고 있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한 객관적 사실만을 논하는 경제에서 고상한 감성주의는 치명적인 독일 뿐이다.

그런 이유로 2020년, 여전히 냉철하고 날카로운 사회의 우리는 경제학자의 사고력이 어째서 윤리에 초점을 두게 되었고 정의로 뿌리내리게 됐는지 이해하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어느 일부는 덮어두고 모르는 척하는 무지를 택할지도 모른다.

당시 기득권은 커녕 서민층을 위한 외침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느 집단에서도 환영 받지 못했던 소수를 위한 그 윤리적 실천이 오늘날 경제적 효용성을 증대 시키는 또 하나의 정신으로 떠오르길 바란다.

삶을 바라보는 시야에 절대성을 부여하지 말자. 악마는 항상 꼴찌부터 잡아먹으며, 내일의 나는 악마의 고뇌와 분투 속에서 경제의 진정한 임무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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